스토리1

검교참판공파

백마랑 2009. 11. 26. 21:45
檢校參判公(諱 繼胤) (검교참판공 휘 계윤)

佐翼原從功臣嘉善大夫檢校參判兼 經筵參贊官 韓公(諱 繼胤)
(원종좌익공신 가선대부 검교참판 겸 경연참찬관 한공 휘 계윤)


 
공의 휘는 계윤이요 호는 柳岩(류암)이다.
태종 15년(1415)에 탄생하시니 부친은 함길도 도관찰사 겸 함흥부윤 惠(혜)요
모친 성주 있는 동지총제 穗(수)의 따님이요, 계모친은 창녕 성씨로 판중추 양혜공의 따님이시다.
조부는 태종조에 영의정을 지낸 문간공 상경이시며
공의 부인은 경주 최씨로 대사헌 문손의 따님이시다.
  공이 일찍이 공신의 후예로 主簿(주부)일 때에 좌익원종공신에 책록되었으며
통훈대부 천녕현감 사헌부장령을 거쳐 검교참판 겸 경연참찬관에 이르렀다.
성종 6년(1475)에 별세하시니 壽가 61이요,
자녀는 2남 3녀로 장남은 형조정랑 준이요, 차남은 통사랑 우이다.
  공의 유택은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오금리(현 서울 송파구 금오동) 건좌원이었고
配位 경주 최씨는 오금리 공묘 백호합국이었으나 현세에 와서 도시 확장공사에 의해
1971년 4월 2일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금곡리 파곡 인좌원에 양위 합장으로 입표하였다.
시향일은 매년 음력 10월 초3일이다.
  공의 별세 후 500년이 지난 1989년 국추절에 후손들이 성금을 모아 신도비를 세웠다.
비문은 문화공보부 서기관을 지낸 공의 16대손 중석이 짓고
서울대학교 교수 문학박사 상갑이 썼으며
참판공의 종중에서 세운 것이다.

 

神道碑文(신도비문)

原文;
(그림을 클릭하면 원문을 크게 볼 수 있음)


墓碑文
(묘비문)
嘉善大夫 檢校參判(가선대부 검교참판) 한공 휘계윤은 호류암이니 본관은 청주이다.
시조 휘 란은 문하태위 시 위양이요
7세 휘 강은 시 문혜이며 5대조의 휘 악은 시 사숙이다.
증조의 휘는 수요 호는 류항이며 시 문경이고 조선조 추충동덕익대개국공신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시 문간으로 휘상경의 손자이며
약관 12세에 생원시에 등과하여 종묘서령으로 15세에 대고에 장원급제하여 제전사사 소윤하고
함길도도관찰사를 역임한 청산군 증영의정 휘 혜의 아들이시다.
  공은 태종 15년 을미새으로품성이 근신온화하고 기국이 헌활정민하였다.
9세인 세종 5년 계묘에 문간공이 서거하고 17세인 세종 13년 또 상을 당하여
3년간의 상을 치루는데 자신에게 엄하였고 3년간을 초가 오막살이에서 상을 치루었다.
부군은 개국원훈의 자손이며 蔭仕로써 종6품 主簿로 출사하여
통훈대부 천녕현감으로 좌익종공신에 책록되어 정4품 사헌부장령에 오르고
계속 승진하야 가선대부 검교참판 겸 경연참찬관에 이르노라
오호 애재라 부군이 성종 6년 을미 1475년 5월 초4일에 終命하시니
향년이 61이라. 처음에는 광주군 중대면 오금리(현 송파구 오금동) 건좌향이었으나
도시 개발화로 1971년 신해 4월 2일에 이곳 남양주군 진접면 금곡리 장파곡 인좌원에 면봉하고
1975년 을묘에 입석한 묘비를 본회종의로 내용을 보완하여 개수한 것이며
후손들의 징성이 담긴 비문을 각서입석함은 유구한 전승을 위함이로다.
                                                   1993년 계유 9월 17일
                                                          17세손     중석  근식
                                                           검교참판공파 종친회 근수                  
    

 

'스토리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49재 의미와 지내는 방법  (0) 2012.09.16
꽃과 눈마춤하다.  (0) 2012.04.07
부여- 연꽃 축제에.. 7.27.일.당일  (0) 2008.07.22
[스크랩] 보성 일림산  (0) 2008.04.23
[스크랩] 일림산 [보성 웅치]  (0) 2008.04.23